북극항로 상업화, 조선·해운이 잡아야 할 기회와 리스크 | 전략대장 이팀장

요즘 물류 이야기 나오면 “아시아에서 유럽까지 가는 길이 진짜 바뀌는 거야?”라는 질문이 꼭 따라붙어요.

예전엔 수에즈 운하가 거의 ‘정답’처럼 여겨졌는데, 요즘은 북쪽 바다가 슬금슬금 열리면서 이야기의 판이 달라지고 있죠.

바로 북극항로 얘기입니다.

다만 이 주제는 분위기에 휩쓸려 “무조건 대박”이라고 말하기엔 변수가 너무 많아요.

얼음이 줄어든다고 해서 곧바로 365일 안전하게 다니는 길이 되는 것도 아니고, 국가 간 이해관계도 엄청 복잡하거든요.

그래서 오늘은 북극항로가 왜 주목받는지, 그리고 조선과 해운이 어디서 기회를 잡을 수 있는지(동시에 어떤 리스크를 같이 봐야 하는지) 제 관점으로 정리해볼게요.


지구 온난화로 인한 북극항로 기회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시간과 거리”예요.

동북아에서 북유럽으로 가는 길을 예로 들면, 기존 수에즈 운하 항로 대비 운항거리가 약 32% 줄고, 소요 기간도 40% 이상 단축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와요. 한 번에 감이 안 오면 이렇게 생각해보면 됩니다. ‘한 달 걸리던 항해가 20일 안팎으로 줄 수 있다’는 얘기거든요.

 

해운은 ‘하루’가 돈이에요. 항해 기간이 줄면

  • 선박이 같은 기간에 더 많은 회전을 할 수 있고,
  • 연료비·운항비가 내려가고,
  • 화주 입장에서는 재고(인벤토리) 부담이 줄고,
  • 일정이 안정되면 물량이 더 붙을 가능성도 커집니다.

실제로 북극항로를 거쳐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향한 컨테이너선 항해가 국제적으로 크게 주목받았던 적이 있어요. 어떤 항해는 출항 후 약 22일 만에 유럽 항만에 도착하며 “정기 컨테이너 노선도 가능해지는 거 아니냐”는 기대를 키웠죠. 여기서

중요한 건 ‘한 번’ 가는 이벤트가 아니라, 정기 노선을 만들 정도로 안정적으로 반복될 수 있느냐입니다.

 

결국 핵심은 운항 가능 기간이에요. 그동안 북극항로는 해빙(바다 얼음) 면적이 가장 적은 7~10월 정도에만 운항이 가능해, 연중 운항이 필요한 컨테이너 정기 노선에는 붙이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죠. 그런데 지구 온난화가 가속되면서 해빙 면적이 감소하고, 운항 가능한 창(window)이 늘어날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진 겁니다.

 

물동량 흐름도 주목할 만해요. 북극항로 통행 물동량이 2015년 543만 톤 수준에서 2024년 3,790만 톤 수준까지 커졌다는 흐름이 제시되기도 합니다. 단순한 ‘가능성’이 아니라, 이미 시장이 움직이고 있다는 신호로 볼 수 있죠.

 

다만 여기서 솔직히 한 가지는 분명히 해야 해요. “언제부터 연중 항로가 되느냐”는 아직 누구도 확답하기 어렵습니다. 해빙은 줄어도 유빙(흐르는 얼음), 안개, 기상 급변 같은 북극 특유의 변수는 여전히 남아 있거든요. 그래서 북극항로는 ‘열렸다/안 열렸다’의 흑백이 아니라, “열리는 폭이 커지는 중”이라고 보는 게 더 현실적입니다.


해외 국가들의 참여와 경쟁 구도

북극항로를 단순한 바닷길로만 보면 오해하기 쉬워요.

이건 해운만의 게임이 아니라, 자원·안보·기술·외교가 한꺼번에 엮인 ‘국가전’에 더 가깝거든요.

북극해와 맞닿아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공유하는 인접 8개 나라가 주도권을 가지고 움직이고, 그 주변으로 여러 옵서버 국가들이 참여하면서 영향력이 확장되는 구조입니다. 결국 북극항로는 “누가 항로를 통제하고, 누가 인프라를 깔고, 누가 선박을 공급하고, 누가 물류 허브를 차지하느냐”의 싸움이에요.

 

국가별로는 대략 이런 그림이 보입니다.

  • 러시아: 항만·물류·교통·통신·자원까지 전방위 투자를 내세우며 상용화를 서두르는 쪽이에요. 쇄빙선 보유량도 압도적이고, 더 늘리겠다는 목표도 공격적입니다.
  • 미국: 북극을 안보·전략 관점에서 강하게 보고, 군사·외교 라인에서 존재감을 키우려는 움직임이 이어집니다.
  • 중국: 스스로를 ‘근(近)북극국’이라 부르며 북극을 장기 물류·산업 전략에 포함시키려는 접근을 해요. ‘빙상 실크로드(Polar Silk Road)’처럼 상징적인 키워드를 내세우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이 경쟁 구도를 보면, 북극항로가 단기간에 “모두에게 열린 공짜 고속도로”가 되기는 어렵다는 것도 같이 보입니다.

특정 국가의 규제, 통항 허가, 비용 구조, 정치적 리스크가 항상 따라붙을 수 있어요.


북극항로 경쟁 속 한국의 움직임

그럼 한국은 어디에 서 있을까요? 저는 한국의 포지션이 꽤 독특하다고 봐요. 항로를 ‘소유’하진 않지만, 북극항로가 열릴수록 반드시 필요한 것들을 잘하는 나라거든요. 바로 조선과 해운, 그리고 항만입니다.

다만 기회만큼 숙제도 분명합니다. 크게 “경제적 제약”과 “환경·지정학 제약”으로 나눠볼 수 있어요.

1) 경제적 제약: 선종과 항만 역량의 미스매치

부산항은 컨테이너 환적 중심으로 성장해왔죠. 그런데 북극항로에서 당장 활발한 선종은 벌크선 비중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지적이 있어요. 즉, 항만이 잘한다고 끝이 아니라 “어떤 물동량이, 어떤 선박으로, 어떤 형태로 들어오느냐”까지 같이 설계해야 합니다.

컨테이너 정기 노선은 특히 까다로워요. 연중 정례 운항이 되어야 수익성이 나오는데, 북극항로가 그 조건을 얼마나 빨리 충족하느냐가 관건이죠. 그래서 지금 단계에서는 ‘무조건 컨테이너 대전환’보다, 벌크·에너지·프로젝트 화물 같은 흐름을 함께 보는 게 더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2) 경제적 제약: 친환경 연료와 보험료

북극은 규제가 더 엄격해질 가능성이 높고, 친환경 연료 전환도 피하기 어렵습니다. 문제는 “친환경이 맞다/틀리다”가 아니라, 전환 비용과 효율이 사업성에 직접 영향을 준다는 점이에요. 게다가 유빙 사고 위험이 커지면 보험료가 오를 수 있고, 결국 비용 절감 효과가 생각만큼 크게 안 나올 수도 있습니다.

3) 환경·지정학 제약: 러시아 인근 해역 리스크와 통항 규율

북극항로의 상당 구간이 러시아 인근 해역을 지나다 보니 지정학 리스크가 큽니다. 통항 허가, 신청 시스템 같은 절차가 존재하고, 국제 정세에 따라 체감 난이도가 바뀔 수 있어요. “길이 열렸는데 못 간다”는 상황도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입니다.

4) 환경·공급 제약: 쇄빙선이 부족하다

이건 현실적으로 가장 큰 병목 중 하나라고 봐요. 쇄빙선은 만들기도 어렵고, 건조 기간도 길어요. 수요가 늘면 늘수록 “선박을 누가, 얼마나, 얼마나 빨리 공급하느냐”가 게임 체인저가 됩니다.

5) 시간 제약: 운항 가능한 시즌이 아직은 제한적

기상과 해빙 조건 때문에 동절기에는 운항이 어렵고, 현재 기준으로는 통상 운항 가능 기간이 연중 3개월 이내로 언급되기도 합니다. 다만 중장기적으로는 2040년경에는 4~8개월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있어요. 이 부분은 가정이 많아서 “가능성”으로 보는 게 맞습니다.

 

정리하면, 한국이 북극항로에서 이득을 보려면 “바로 지금 뛰어들어 당장 돈 번다”가 아니라, 제약을 인정한 상태에서 단계별로 포지션을 선점하는 쪽이 현실적입니다.


앞으로 가야할 길

저는 북극항로를 ‘길’이 아니라 ‘패키지 산업’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항로 하나가 열리면, 그 뒤에 따라오는 건 선박(쇄빙선·쇄빙 LNG선·친환경 선박), 항만 인프라, MRO(정비·수리·개조), 보험·금융, 통신·관제, 그리고 자원 개발과 물류 계약까지 한 덩어리로 움직이거든요.

 

그래서 대응 전략도 두 축으로 나뉘어야 합니다.

1) 정부: 컨트롤타워와 정책의 연속성

여러 기관과 지자체가 각자 예산과 인력을 투입하면, 겉으로는 열심히인데 실제로는 중복이 생기기 쉽습니다. 북극항로처럼 장기전인 이슈는 ‘컨트롤타워’가 중요해요. 중장기 정책 기조를 흔들리지 않게 가져가고, 산업계가 예측 가능하게 투자할 수 있도록 제도 기반을 다져야 합니다. (최근에는 북극항로 지원과 관련한 법안 발의나 토론회 개최 같은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죠.)

2) 민간: 국가별 수요를 읽고, 조선·해운을 묶어 ‘토털’로 움직이기

북극항로 연안국이나 이해관계국이 원하는 건 각기 다를 수 있어요. 어떤 나라는 쇄빙선이 급하고, 어떤 나라는 LNG 운송선이 필요하고, 어떤 나라는 항만과 물류 시스템이 필요하겠죠. 한국은 조선과 해운이 동시에 강한 편이라, 선박 건조만 파는 게 아니라 ‘운항 데이터+선박+정비+항만 연계’까지 묶어서 제안할 수 있는 구조가 됩니다.

 

특히 조선 쪽은 기회가 꽤 명확해요.

  • 국내 조선사는 쇄빙선 건조 경험이 있고,
  • LNG선 건조 경쟁력도 매우 강한 편이고(세계 시장 점유율이 60%를 넘는다는 평가가 제시되기도 합니다),
  • 향후 북극 코드 같은 안전·환경 규제가 강화되면 친환경 선박 수요는 더 늘 가능성이 큽니다.

해운·항만 쪽도 마찬가지입니다.

  • 국내 선사들은 이미 북극항로 시험 운항을 통해 데이터를 쌓아가고 있고,
  • 부산항은 동북아 환적 허브로서 강점이 있고,
  • 진해 신항 같은 신규 거점과 인접 항만을 함께 묶으면 ‘동북아 통합 물류 거점’ 그림도 그려볼 수 있어요.

마지막으로 자원 공급망 관점도 빼놓기 어렵습니다. 북극권에는 석유(전 세계 매장량의 약 13% 추정), 천연가스(약 30% 추정), 희토류 같은 자원이 많다는 이야기들이 있어요. 수입 의존도가 높은 나라라면 ‘공급망 다변화’라는 관점에서 북극항로를 볼 이유가 충분합니다. 다만 자원 개발은 환경 이슈와 충돌하기 쉬워서, “확보”만 외치기보다는 지속가능성과 리스크 관리가 같이 가야 한다고 봅니다.

 

결국 결론은 이거예요.
북극항로는 “열리면 돈 번다”가 아니라, “열리는 속도에 맞춰 준비한 만큼 가져간다”는 시장입니다.
지금은 그 준비를 ‘선박-해운-항만-정책’으로 묶어 패키지로 설계해야 할 타이밍이고요.


[참고] '야말(Yamal) LNG 프로젝트' 사례로 본 북극항로 개발 사업

북극항로가 ‘패키지 산업’이라는 걸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게 대형 LNG 프로젝트들이에요. 러시아 북극권에서 진행된 야말 LNG 프로젝트는 개발·생산·수송이 한 번에 묶인 형태였고, 에너지 기업, 금융 투자자, 엔지니어링사, 장비 공급사, 해운사, 그리고 선박을 만드는 조선사가 모두 얽혀 움직였습니다.

 

여기서 제가 인상 깊게 보는 포인트는 두 가지예요.

첫째, 북극항로는 단순히 배만 띄운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점. 플랜트(EPC), 장비 공급, 자본 조달, 운송 계약이 ‘동시에’ 설계되어야 합니다.

둘째, 국제 정세가 바뀌면 파트너 구성이 바뀐다는 점. 제재와 지정학 이슈로 서방 파트너가 빠질 수도 있고, 그 빈자리를 다른 자본이 메우면서 항로 운영이 재편될 수도 있어요. 북극항로를 준비한다는 건, 결국 이런 변동성까지 포함해 사업 구조를 짜는 일입니다.